매일경제 5.20일자 기사 내용이다
모든 분야가 그렇듯 정비업계도 이따금 예상치 못한 판결들이 등장해 충격을 준다. 부산을 대표하는 재건축 사업지인 삼익비치 조합의 매도청구 소송 항소심 판결도 그중 하나다.
판결의 의미를 이해하려면 재개발과 재건축의 차이점, 그리고 매도청구 제도의 기본 개념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재건축과 재개발을 혼동하는 경우가 많지만 재건축과 재개발은 절차와 성격이 다르다. 재건축은 '정비 기반시설이 양호'하지만 노후·불량한 공동주택이 밀집한 지역에서 '주거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사업이다. 정비 기반시설이 양호하다는 것은 도로나 상하수도, 공원 등의 인프라스트럭처가 비교적 잘 구축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재건축 사업을 위한 정비구역을 지정하거나 정비계획을 수립할 때도 기반시설 확충보다는 공동주택 신축에 방점이 찍힌다.
재개발은 '주거환경을 개선'한다는 측면에서 재건축과 같지만 '정비 기반시설이 열악'한 지역에서 시행된다는 점이 재건축과 구분되는 결정적 지표다. 서울을 예로 들면 정비 기반시설이 비교적 양호한 강남권은 재건축 사업, 정비 기반시설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강북권은 재개발 사업이 주된 사업 유형이 된다. 자연히 재개발은 열악한 기반시설의 개선과 확충이 사업의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기반시설 확충은 본래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등 공적 부문이 담당해야 하지만 민간 재개발이 그 기능을 일부 수행하니 재건축에 비해 공익성이 크다고 평가한다.
공익성 크기가 다른 재건축과 재개발은 조합 가입 방식과 사업이탈자에 대한 소유권 확보 방식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사익적 성격이 짙은 재건축은 조합 설립에 동의한 소유자만 조합원이 되는 '임의 가입', 공익적 성격이 두드러지는 재개발 조합은 전체 소유자가 조합원이 되는 '강제 가입' 방식이다. 재건축은 조합 설립 단계에서 사업 불참을 선택할 수 있지만 재개발은 조합 설립 단계에서는 가입 거부가 불가능하고 사업시행인가 이후 분양 신청 단계에 이르러서야 사업 탈퇴가 가능할 뿐이다.
사업이탈자에 대한 소유권 취득 수단도 다르다. 재개발 조합은 '수용권'을, 재건축 조합은 '매도청구권'을 행사한다. 수용과 매도청구는 행사 방법과 효과 등 세부적으로는 달라도 사업시행자의 일방적 의사에 의해 소유권을 취득한다는 실질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두 제도 간에 의미 있는 차이가 있다면 소유권 확보를 위해 조합이 지급해야 하는 반대급부 정도다. 수용에 따르는 보상금 산정에는 개발이익이 배제되지만, 매도청구로 인한 매매대금 산정에는 개발이익이 포함된다. 개발 사업에서 창출되는 가치 향상분의 보상 여부도 공익성의 크기에 따라 재건축과 재개발이 결론을 달리하는 것이다.
어쨌거나 지금껏 정비업계가 이해하고 있던 재건축 구역 소유자들의 사업이탈 방식은 두 유형이었다. 조합 설립 단계에서 조합 가입 자체를 거부하는 유형, 그리고 조합 설립 단계에서 조합에 가입했다가 분양 신청 단계에서 이탈하는 유형. 그런데 이번 삼익비치 조합의 매도청구 사안에서 부산고등법원은 완전히 새로운 제3의 사업이탈 방식을 제시한다. 조합 설립 단계에서 조합 가입을 거부했더라도 분양 신청 기간 만료 전까지 조합 설립 동의서를 제출함으로써 조합에 가입할 수 있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조합 가입 거부자인 미동의자를 상대로 한 조합의 매도청구권은 사실상 무력화된다. 매도청구를 행사해 소송이 진행 중이건 이미 소송이 확정돼 끝이 났건 미동의자는 분양 신청 기간 만료 전이기만 하다면 언제든 일방적 의사에 의해 조합에 가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합 설립 동의서를 제출하는 순간 조합원이 되고, 조합원이 된 이상 미동의자임을 전제로 한 매도청구는 의미가 없어진다. 조합 설립 단계에서 조합 가입을 거부한 소유자에게 조합의 매도청구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그린 라이트'를 켜 준 셈이다. 일단 조합 가입을 거부하고 사업 진행과 부동산 시세 변동을 확인한 후 매도청구 시점과 분양 신청 기간 만료 시점에 따른 매매 가격의 유불리를 저울질한 후 어느 한쪽의 시세에 따른 매매를 선택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재건축 구역 소유자는 조합 가입 거부 후 시세 변동을 확인하고 유리한 시점으로 선택해 매매할 수 있다는 새로운 유형의 사업 탈퇴 방식을 인정한 것이나 다름없기에 이번 삼익비치 조합 매도청구 건에 관한 부산고등법원 판결은 획기적이다. 향후 대법원에서 결론이 유지될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남긴 하지만 상고심 판결이 날 때까지 통상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에서 업계 혼란은 불가피해 보인다.
사업 시행자인 조합 입장에서 혼란을 최소화하고 재발을 방지하려면 정관 개정을 서두를 필요가 있다. '미동의자의 조합 가입 시점을 분양 신청 기간 만료일까지'로 규정한 조합 정관이 이번 판결의 최대 빌미가 됐기 때문이다.
반면, 조합원 지위 취득 기회나 시세 차익 기회를 상당히 폭넓게 보장함으로써 사업에 반대하는 소수 소유자의 권익을 높인 측면이 있으니 재건축 미동의자나 미동의자 물건을 매수하려는 투자자 입장에서는 대단히 반길 만한 판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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